본문 바로가기
소모하기/도서

유키토 키시로 - 총몽 (Gunnm, 銃夢)

by Yionguon 2014. 1. 17.

1월 28일자로 2부 라스트 오더까지 완결이 된다는 소식에 심심할 때 마다 몇 권씩 읽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1~2권 내용을 가지고 만든 OVA만 보고 별로다 싶어 원작은 건들지도 않았는데 지금 읽어보니 무지 재밌다. 사이보그를 소재로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이렇게 쉽고 재밌게 또 깊고 풍부하게 그려낸 작품은 흔치않을 것이다. 총몽은 명작이다.

1부와 외전, 1부 결말을 대체하는 2부인 라스트 오더를 꿰뚫는 질문은 대강 3개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뇌를 제외한 전신을 기계로 대체한 사람, 뇌만 기계로 대체한 사람, 몸과 뇌를 전부 기계로 대체한 사람, 유전자 조작으로 신체를 개조한 사람, 유전자 조작으로 개조되어 도구처럼 사용되는 사람, 인간이란 무엇이고,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봐야 하느냐 하는 문제

 인류가 계층과 종족, 국가, 지배와 피지배 라는 엄연한 벽을 두고 멸종의 위험을 피하며 언제까지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선, 악은 주어진 환경과 무관하게 선택할 수 있는가, 나와 관련된 소수와 나와 관련 없는 다수 중 어느 쪽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가, 통제되는 질서와 위험한 자유 중 무엇이 중요한가, 이러한 상반된 것들이 이분법적으로 판단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화를 거듭하면서 만화가 점점 격투기 장르에 가까워 지긴 하지만 세가지 화두는 계속해서 등장한다.
도리어 삼천포로 빠지는 과정에서 작가가 SF적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모습이 여러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듯도 하다.


 몸을 구성하는 물질과 상관 없이 인간과 동일한 구조의 두뇌와 호르몬 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겉모습 외엔 대화에 있어서 인간과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호르몬은 뇌 외에도 다양한 표적기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신체를 개조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감정을 느끼는 과정에서 미세한 오차가 생기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도 사용되는 인공심장은 호르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때문에 호르몬이 분비되더라도 인공 심장의 박동수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에 감정과 행동도 미세하게나마 영향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잘은 모르겠다만 그렇지 않을까?) 이런 사소한 차이들이 맞물리게 되면 사이보그는 인간이 보기에 어색한 행동을 하게 되고, 인간의 타박을 받게 된다. ('넌 기계다.' or '너는 영혼이 없다.' 같은) 물론 이것은 영혼이 없다기 보다 호르몬의 제약과 지배에서 벗어난 것에 가깝지만, 사이보그가 '인간처럼' 행동하기 위해선 번거롭게나마 호르몬 원리를 감안해서 여러 기관을 제작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강화된 신체로 기존 인간과 같은 호르몬 시스템을 갖는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알 수 없다. 엄청난 재앙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상 새로운 신체에 맞게 제거하거나 조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이라는 범주 자체는 인간과 같은 구조의 두뇌와 호르몬 체계 유무 여부로 결정하는 게 가장 타당하고 공정하지 않을까? 인간이란 무엇일까.. 심오한 질문이로다.

 의외로 깊게 짚고 넘어가지 않은 문제는 신체, 두뇌 개조 전, 후가 동일인이냐 타인이냐 하는 문제인데('테세우스의 배' 역설) 대체로 두뇌의 구성 성분에만 주목하고자신, 기억을 옮기는 과정에서 '나'가 어느 시점에 몇 회 사라졌는지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 괜히 얘기가 복잡해지기도 하고, 연재 당시의 시대사적인(?) 한계도 있었을 것이다. 2부에 와서 '앨리어스의 문제'라는 용어로 한 번 언급되고 그 이후로는 얘기가 없다. 여하당간, 여러가지 논란거리들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노바 박사는 참 멋진 캐릭터다.

 작가는 드레곤볼 처럼 전 우주인의 염원을 모아 원기옥을 만들어서 절대악에게 날리는 것 처럼 긍정적인 상황은 불가능하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종족의 존속을 위해 전 국민을 사이보그화 하는 것이나 행성간의 파워게임에서 밀려나 전부 퇴보하는 것 중에 고르는 일은 거실 소파에 누워서 만화책 읽는 독자 입장에서도 무지 고민되는 일이다.

이 만화는 읽다 보면 악당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납득이 간다. '그래 너는 충분히 깽판칠만 하구나..' 하고. 처음부터 나쁘게 살려던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겠다는 이유로 온통 난장을 쳐놓고 (주로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악인이 불쌍하게 사망한다.) 선악 개념도 모호해서 방해된다고 한 손으로 퍽하고 죽이는 경우도 있다. 차라리 그냥 불쌍하게 태어나 악하게 살아온 악당의 말이 더 진솔하고 납득이 간다. 현실도 이런 것 같다. 분명 착한 사람 에게도 악한 면이 있고, 악한 사람에게도 착한 면은 있다. 다 사연이 있다. 그 사연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다 나름의 사연이 있는 것이다. 사연이 있다 해도 핑계 대지 마라! 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분명 그 핑계가 아니고서는 삶을 유지할 수 없었던 사람도 있는 것이다. 물론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선량하게 살아가려면 악인이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한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이것도 일종의 폭력이라면 폭력이다. 작가는 이것을 불교의 업, '카르마(Karma)'라는 개념을 빌려와 인류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았다. 각자 살아가기 위해 폭력을 도구로 휘두르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사실, 우리의 삶 자체가 도둑질과 살인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은 잊지 말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다. 그런 면에서 로켓 해머로 범죄자들의 두개골을 박살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자신을 부정 않는 이드는 참 멋진 캐릭터였다.


2부는 1월 28일 연재로 완결되고 이후로는 화성 이야기를 다루는 3부, 화성 전기(가칭)가 연재될 예정이라 한다. 2부 후반의 ZOTT에서 너무 스토리를 끌었다는 평을 듣고 있는데 솔직히 연재 기다리면서 봤으면 좀 답답했을 법도 하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총몽을 영화화 하겠다고 했었는데 찾아보니까 아바타 3부작의 차기작으로 꼽은 것 같다. 2017년 쯤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들어갈 예정인듯 싶다. 언제 기다리나 싶지만 일본 내에서 판권 가져가 괴악한 영화를 만들어내기 전에 채간 건 참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반응형

댓글0